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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이야기

헤비츠의 가죽이야기

게시판 상세
제목 가죽이야기 2. 천연가죽 이해하기
작성자 헤비츠 (ip:)
  • 작성일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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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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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vitz

 

 

Natural Full-grain Leather

관점을 바꾸면 가치가 보인다

천연 풀그레인 가죽의 이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세기의 카메라 중에는 LOMO LC-A라는 장난감에 가까운 카메라가 있다. 구 소련의 스파이용 카메라라고 홍보되고 있는 '로모'는 COSINA를 베이스로 한 작고 가벼운 포켓 카메라로, 1984년부터 대량생산됐다. '과초점거리'를 응용한 거리초점 방식과 자동노출을 지원하여 목측식 카메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해상력이 떨어지는 렌즈 때문에 얼마간 외면당했고, 결국 1994년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생산을 중단할 즈음, 몇몇 청년들은 이 카메라의 독특한 결과물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특히 스트릿 카메라로서의 가치를 알아본다. 로모는 단순한 렌즈 설계 때문에 사진 주변부의 해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특징이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사진의 주위에 빛을 고르게 뿌리지 못해서 동그랗게 어두운 띠가 생기기도 했는데(터널링), 오히려 이들은 이러한 결점을 로모만의 특징(로모이펙트)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때로는 설계 단차로 인해 빛이 새서 사진이 뿌옇게 바래거나 이상한 잡색이 끼기도 했는데, 이 역시 로모의 캐릭터가 된다.

수요가 늘어나자 로모는 다시 생산되었고,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들이 필름의 해상력을 월등하게 앞서는 오늘날, 로모는 되려 필름카메라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충분히 카메라로서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로모그래피사는 오히려 더욱 해상력이 떨어지는 플라스틱 렌즈 버전이라던가, 아예 색이 섞인 빛을 뿌려주는 로모용 컬러플래시 등을 만든다. 그동안 존재하던 '좋은 사진'의 기준에 반하는 개량이 이루어지고, 전혀 새로운 발상의 액세서리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로모가 만들어낸 특유의 결점들은 인스타그램을 매개로 하여 디지털시대에도 구현되고 있다. 이 새로운 시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글·사진 : 김준기

원문게시일 : 2014.06.05

최종수정일 : 2015.11.23

 

 

 







헤비츠에서 사용 중인 베지터블 가죽 원장의 모습. (위)미네르바 복스 (아래)뷰테로. ⓒ hevitz




 

결점은 개성이 된다

 

자연을 극복하기 힘들었던 과거에 결점이란 흔한 것이었고, 사람들은 '무결점flawless'에 큰 매력을 느꼈다. 고전 예술들이 엄격하게 통제되거나, 극단적인 완성도를 추구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대량제조된 공산품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바꾸자, 결점의 의미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이 요망하게도 '다른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탓이다.

현대에도 여전히 무결점은 희소하고 어려운 달성과제다. 그렇지만 기계화된 공정이 불량률을 소수점 단위로 낮추고, 획일화된 제조품들이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흔해 빠진 완제품이 주는 감동은 조금씩 식어간다.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모조로 발전하여,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연 석유화학소재에 대한 반감도 더해졌다. 비록 제조품이 완벽하게 디자인되어 생산되더라도, 이제 사람들은 거기에 튜닝을 하여 나만의 제품을 만들거나, 때로 직접 천연원료를 가져다 삐뚤빼뚤한 수제품을 만든다. 결점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정의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뜻이다.





​표면이 균일하지 않은 베지터블 가죽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헤비츠의 제품. 이러한 불균일성은 그 자체로도 디자인이다. ⓒ hevitz


오늘날, 완벽하게 통제된 인공물들 사이에서 결점은 '자연적이고', '독특하며', '인간적이고', '따뜻한 것'을 의미한다. 결점으로 인해 형성되는 희소성은 종종 고가품의 마케팅에 사용되긴 하지만, 헤비츠가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보면 이는 단지 부차적으로(그리고 지극히 상업적 관점에서) 얻어지는 현상이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구분지어서' 그에 합당한 만족감을 안겨주는 브랜드가 될 것인지, 혹은 평범한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세상을 변화하는 제조자가 될 것인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예를 들어 벤틀리는 독특한 문양의 우드패널로 유명하지만, 이 자동차를 소유할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동화 공장이 아니라 작업자들이 직접 참여해 느릿하게 만들어내는 이 고가 자동차의 실내장식은 자연소재의 결점을 ​그대로 살린 좋은 사례다. 반대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리바이스는 약간의 아이디어로 대중에게 희소성이라는 만족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진품임을 증명하는 빨간 탭으로 유명한 리바이스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빨간 블랭크탭을 마케팅으로 풀어내 큰 인기를 끈다. 리바이스는 불규칙한 워싱 디자인이나 똑바르지 못한 절개선 등, 결점을 마케팅으로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매스티지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가죽 한가운데를 지나는 어깨주름이 유난히 진하게 형성된 베지터블 가죽. 악어가죽 등은 이런 특징적인 무늬를 전면에 사용하기도 한다.
 ⓒ hevitz

 

 

베지터블 가죽을 다루는 입장에서, 결점은 희소마케팅으로 풀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사진 속의 가죽 원장을 보고 어떤 사람은 '버려야 할 부분'을 걱정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독특한 마크가 있는 부분을 가방 전면에 배치해 오히려 상품성을 높일 궁리를 한다. 트럭 타프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freitag의 디자인 관점은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헤비츠는 마케팅도, 브랜드 스토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좋은 재료의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가치에 대해 말하고,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그 위에 마케팅도 브랜드 스토리도 쌓아올릴 수 있다. 리바이스보다는 벤틀리에, 벤틀리보다는 프라이탁에 더 많이 동의하지만, 프라이탁과 완전히 다른 재료를 다루기 때문에 주목하는 바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사실 베지터블 가죽은 결점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오히려 더 높은 가치로 생산해내는 대표품목 중 하나다. 가죽 한 가운데 나 있는 저 주름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다원주의적 주장이 아니라, 자연주의에 더 가깝다.



진짜의 증명 : 너의 민낯을 보여줘

 

 

 


 

 

우리는 여전히 균일한 표면에 집착하는 소비자들을 극복하지 못해 아직 저 독특한 결점을 제품에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가죽이 되기 전 모습을 알고 있다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무늬다. 왼쪽 그림은 구글에서 'Diagram of Cut Sections of Cattle Hide'로 검색한 것으로, 소에서 벗겨낸 가죽을 펼쳐서 부위별로 구분한 교과서스러운 모식도다. 많은 가죽협회나 회사들이 이 모습을 단순화하여 로고의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죽 강좌를 수강할 수 있는 마크비의 로고, 예시, 오른쪽)

실제 가죽의 사용에 있어서 저렇게 딱딱 구분하지는 않고, 필요에 따라서 다르게 잘라 사용한다. 이를테면 어깨쪽을 더 크게 자르거나, 아니면 엉덩이를 더 넓게 가져가 사등분하거나, 아예 중앙선을 따라 반으로 나눠 사용하는 등이다. 부위별로 약간씩 특징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는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가죽이 소의 피부 중 어느 일부분'이라는 단순한 진실이다.



​어깨부위에서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뒷목)가로주름. 헤비츠에서 사용하는 베지터블 가죽은 주로 어깨 부위다.  ⓒ hevitz


사람과 똑같다. 피부가 지속적으로 접히는 부위는 당연히 주름이 져있고, 뼈 때문에 튀어나온 부분은 까맣게 변색되기도, 피부가 단단해지기도 한다. 어느 부위는 더 두껍고, 어느 부위는 더 부드럽다. 대개 어깨에는 소의 목주름이 접힌 흔적이 가로로 나있고, 두터운 엉덩이 부위에는 꼬리뼈에서 뒤로 이어지는 굵고 진한 흔적이 있으며, 배 부분은 부드럽고 약하다. 소의 생장환경이나 상태에 따라 개채별로 독특한 흔적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어떤 소는 피부에 점이 많을 수도 있고, 나무에 긁힌 상처자국이 피부에 있을수도 있다.

한 부위라고 하지만, 숄더 가죽만 평균 가로세로가 1.2~1.5​m에 달한다. 사람도 팔꿈치와 어깨의 피부가 다르고, 같은 등이라도 위와 아래의 피부상태가 다른데, 그렇게 큰 소의 피부가 곱고 균일하기만 할 리 없다. 베지터블 가죽으로 제품을 만들면서 표면의 균일성이 전혀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불균일성이야말로 어느 순간 극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무엇보다 그 가죽이 '진짜'라는 결정적 증거다.

사람들이 마릴린 먼로의, 고소영의 점이 '지워져야 할 결점'이라고 생각할까, 혹은 그 배우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할까. 영화 서로게이트(Surrogates, 2009)의 퍼펫들이 어딘가 어색하여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지나치게 매끈한 피부' 덕분이다. 최초 컴퓨터 그래픽(CG)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실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 상태의 불규칙성을 구현하는 것이었건만, 동시에 많은 사진관들이 증명사진 속 사람피부를 플라스틱처럼 매끈하게 만들면서 비현실을 창조해왔다. 어쩌면 베지터블 가죽의 아름다움은,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가죽에서도 색상과 텍스쳐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 hevitz


보통 우리는 피부가 마음에 안 든다면 화장으로 커버를 한다. 조금 더 본격적으로 수정하고 싶다면 피부과 시술을 받고, 자기 재생능력을 통해 새로운 피부가 자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미 죽어 회복하지 못하는 가죽에게 '피부재생'은 없다. 가죽의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태너리가 취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화장으로 커버하거나, 아예 피부를 깨끗하게 갈아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죽은 두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망양층(상가죽)과, 가죽의 특징적인 모습이 있는 얇은 진피층(은면)으로 나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생물학적 결점-혹은 특징들이 있는 곳은 가죽의 은면이고, 여기에 주름이나 점, 땀구멍 등이 남아있다. 피부가 좋은 가죽이라면, 다소 주름이나 점이 있는 은면이라도 자연 그대로 살려서 제품화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가죽은 안료를 진하게 올려 화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똑같은 화장이라도 가벼운 투명화장이 있듯, 가죽에도 투명한 염색법이 있다. 이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가죽이야기3에서 계속 이어간다.

인간의 기술이 놀라울만큼 발전하면서, 인조피부도 개발이 되고, 가죽이 아닌데 가죽 같은 가죽도 생겨났다. 예전에는 가죽의 품질을 좌우하는 은면이 망가지면 어찌할 방법이 없었건만, 이제는 은면이 없는 가죽에 은면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엉망인 은면을 살짝 갈아내고 그 위에 인조 가죽을 올리기도 하고(corrected), 심지어 피할작업 후 남은 상가죽(일명 도꼬, split) 위에 인조 표면을 올리기도 한다(split leather). 예전에는 그냥 버리던 폐기물이, 약간의 작업을 통해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 된다. 이제 깨끗한 가죽만 골라서 어렵게 무두질하는 베지터블 태너리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한 재활용 기술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죽이 소의 피부 중 어느 일부분'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잊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금속으로 무두질한 괴상한 색의 크롬가죽에 진하게 색을 입히고 표면처리를 한 것이 상업 논리에 의해 널리 퍼져나갔다. 크롬가죽이 95%의 점유율을 보이면서, 사람들은 원래 가죽의 모습을 잊었다. 고급 가죽에도 진한 색을 넣고 표면 코팅을 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저가 가죽도 쉽게 그 모습을 따라하고 속일 수 있게 됐다. 어차피 사람이 만든 표면인데 흉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피그먼트 가죽 중에도 좋은 게 있다"느니, "스플릿 가죽도 천연 가죽의 일종"이라느니 하는 표현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점이나 흉터, 혈관 자국 등을 natural mark라고 한다. 아닐린 염색한 베지터블 가죽에서는 이런 내추럴 마크들이 그대로 보이게 되며, 밝은 색에서 좀 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뷰테로(만다린색) 제품의 표면 일부. ⓒ hevitz

 

 

사람들이 진짜 가죽의 민낯에 낯선 것은 당연하다. 이제껏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죽은 이를테면, 성형수술을 하고 두껍게 분칠을 하는 등 인위적으로 결점을 고치고 덮어버린 가죽이다. 표면이 깨끗하고 균일하여 어느 부위나 똑같이 생겼다. 제품을 만들면서 가죽을 버릴 이유도 없고, 재단을 고민할 이유도 없다. 디자인하기 편하고, 만들기도 편하니, 이제는 진짜 가죽을 보여줘도 사람들이 모두 거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진짜와 가짜의 전복이다.

이런 현상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은 식품 분야다. 커스터드 크림빵 하나만 이야기해보자. 현재 제빵재료 중에는 바닐라향을 내는 다양한 인공재료가 있으며,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진짜 바닐라빈은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사용하기도 만만치 않다. 바닐라빈을 넣으면 노란 커스터드 크림에 후추분처럼 까만 점이 박히는데, 소비자들은 이를 '이물질'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진짜 바닐라빈은 모르지만, 합성된 바닐라향은 모두가 알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커스터드 ​크림분이 공장에서 대량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제빵사들은 고생스럽게 진짜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제품을 뜯어서 물에 타 쓰면 그만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요리조차 요즘 전자레인지에 돌려 내는 공장 반조리 제품들이 판을 치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싼 식재료들이 유통된다는 한국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들을 소비자들이 알게 되면 현실이 크게 바뀔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땀 흘려 만든 진짜 커스터드 크림이 좋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새벽부터 고생스럽게 만들어도 한나절이면 쉬어버리는 진짜 커스터드 크림을, 단 돈 천원에 팔 베이커리는 드물다.


이것이 대량생산과 상품성의 진짜 본성이다. 값싼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값싼 원료를 사용해야 하고, 상품성을 높이려면 결점이 많은 진짜보다는 인위적인 가짜를 사용해야 한다.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정을 단순화해주는 공장 반제품을 사용하고, 비싼 전문 인력을 퇴출한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환경을 망치고, 사람의 몸에 독을 밀어 넣는다. 현대 기술들이 정말로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있을까.



헤비츠의 미네르바 복스 제품의 표면 일부(확대, 바느질 3땀에 1cm). 땀구멍이 그대로 보인다. ⓒ hevitz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위적인 가공을 최소화한 베지터블 가죽

 

 

지난 가죽이야기1에서는 공정에 따른 가죽의 분류를 이야기했다. 무두질에서 어떤 용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표적으로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의 차이를 설명했는데, 그 밖에도 알데히드 탠, 로즈 탠, 브레인 탠, 알룸 탠 등 수 많은 무두질 방법이 존재하고 있다. (링크참조)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무두질한 가죽들은 크게 4가지 형태로 판매되는데, 이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문맥대로 "자연적 결점과 그에 따른 상품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아래 분류는 위키피디아 'Leather'의 설명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다.

 

 - Full-grain leather : 풀그레인 레더는 원피의 표면을 샌딩하거나 결점(혹 natural marks)을 제거하지 않은 가죽을 말한다. top-grain이나 corrected 가죽과 반대 개념이다. 이렇게 가죽의 표피를 그대로 두면 섬유질의 강도와 내구도를 유지시킬 수 있다. 또한 표피는 통기성을 가지고 있어, 장기적인 사용에 있어서도 수분율 유지에 유리하다. (이러한 가죽은) 시간이 지날수록 닳아서 낡는다기보다 윤기(고색, patina)를 더해가게 된다. 고급 가구나 신발에 사용되는 풀그레인 레더는 대개 아닐린aniline이나 세미아닐린 두 가지 타입으로 마감된다.

 

- Top-grain leather : 차상급 품질의 탑그레인 레더는 하이엔드 가죽 제품군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형태다. 보통 풀그레인 레더보다 얇고 유연하도록 피할split하여 (은면을) 사용한다.* 표면을 샌딩한 후 마감제(top coat)를 올려 좀 더 차갑고 플라스틱 느낌이 나도록 만드는데, 가죽의 통기성은 감소하고 에이징(natural patina)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풀그레인 레더보다 저렴하고 얼룩에 강하며 오래도록 표면이 손상되지 않는다.

 

- Corrected-grain leather : 표면에 인공적인 표피를 적용한 모든 가죽을 통칭한다. 코렉티드 레더는 보통 베지터블 무두질이나 아닐린 가죽의 기준에 못 미치는 원피를 사용한다. 가죽의 결함은 샌딩으로 제거한 뒤, 인조 표피를 올려 스테인이나 염료를 입힌다. 진한 안료일수록 결점을 잘 가려주기 때문에 코렉티드 레더는 일반적으로 색상가죽(pigmented)이다. 코렉티드 레더는 보통 세미아닐린과 피그먼티드 두 가지 타입으로 마감된다.

 

- Split leather : 스플릿 레더는 원피에서 탑그레인을 제거하고 남은 섬유질 부분이다. 피할 과정에서 은면(top-grain)과 분리된 피할가죽에 인조 표피를 붙이고, 가죽의 표면무늬를 눌러 돋을새김(embossing)을 한다. 이를 bicast leather라고도 한다. 스플릿 레더는 또한 스웨이드suede를 만드는데도 사용된다.

(출처 : 위키피디아 'Leather')​

 


 * 가죽피할작업보기

 

 

 

분류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풀-그레인 레더는 'natural mark'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유일한 가죽이다. 보기 좋은 원피를 엄선해야 하기 때문에 수량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가죽을 푸르딩딩하게 만드는 크롬 태닝은 할 수가 없어서 베지터블 태닝을 해야 한다. 풀그레인 레더는 그 표면을 가리는 안료칠(pigmented)이나 탑코트를 올리지 않는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풀그레인 레더를 굳이 차상급인 탑그레인 레더로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풀그레인 레더가 가진 결점과 단점들은, 이렇게 '진짜의 증명'이 된다.

 

 

 

 



Top-grain leather(왼쪽)와 Full-grain Leahter(오른쪽).

표면 질감과 모미의 불규칙성, 땀구멍의 유무 등을 눈으로 구분할 수 있다. ⓒ hevitz

 


 

지난 포스팅에서 잠시 스쳐가듯 Genuine Leather에 대해 언급했는데, 사실 베지터블 태닝가죽과 크롬 태닝가죽을 모두 '진짜 가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위의 분류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즉, 원피에서 단백질 섬유를 만들고 나머지는 녹여서 제거하는 '무두질' 과정에서 어떤 용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OOO-tanned leather'라고 표현하는 것이고, 이는 모두 '진짜 가죽'이 맞다. 다만 이렇게 무두질이 완료된 가죽(tanned leather)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상태로(혹은 어떻게 가공하여) 시장에 판매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며, 여기에서 인조가죽이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

우선 가공과정에서 재료의 본질이 크게 바뀌지 않는 풀그레인 레더와 탑그레인 레더는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Genuine Leather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둘은 결국 가죽이라는 재료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특징을 장점과 단점으로 파악했는지 정도의 차이만 있다. 그러나 코렉티드 레더와 스플릿 레더는 (관점에 따라) Artificial leather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가죽의 은면이 인조적으로 만든 표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술은 폐기물(split)까지도 인조 은면을 올리거나 이런 저런 무늬를 찍어 재활용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러한 재활용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tanned leather의 품질이 떨어질 때 이를 보완하여 판매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코렉티드 레더가 만들어지고, 가죽재료의 부산물을 다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스플릿 레더가 생긴다.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면에서 바람직할 뿐 아니라, 상품의 제조의도와 적정가격에 맞춰 생산되고 사용된다면 다양한 가격대의 가죽제품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진짜 같은 가짜를 진짜인 척 고가에 판매하는 비양심 제조자들이다. 똑같은 사피아노 무늬라도, 천연 소가죽(크롬태닝)에 찍은 것과 코렉티드 레더에 찍은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소비자들이 가죽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은, 각 가죽들이 가진 고유의 가치와 특징, 그리고 가격이다. 예를 들어 탑그레인 레더는 표면의 느낌 때문에 단단하고 깔끔한 신사숙녀제품군을 만드는데 즐겨 사용된다. 코팅(탑코트) 때문인데, 덕분에 사용 중에 잘 더러워지지 않는데다, 변색에도 강하다. 탑그레인 레더는 대부분 크롬태닝으로 생산되며, 오늘날 고급 가죽제품에는 대부분 고급 탑그레인 레더를 사용한다. 풀그레인 레더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헤비츠이지만 피부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부분, 예를 들어 키케이스에서 키와 닿는 부분 등에는 그러한 탑그레인 레더의 장점을 활용하고 있다.

반면 풀그레인 레더는 자연상태에서의 결점들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타고난 얼룩이나 주름, 점, 흠집 등이 많다. 가죽의 표면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표면에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다보니, 가죽이 물이나 오일을 그대로 흡수하여 쉽게 얼룩진다. 풀그레인 레더는 사용하면서 계속해서 변해가며, 가장 자연적이고 가장 우리 피부와 가깝다.

 


헤비츠에서 취급하고 있는 세 가지 베지터블 가죽 (tan 색상).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네르바(각인), 뷰테로, 미네르바 복스. ​ⓒ hevitz

헤비츠가 고집스럽게 베지터블 가죽을 사용하는 이유는, ​가죽의 분류에 따른 절대적인 가치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베지터블 가죽은 우리가 바람직하고 좋다고 믿는 인본적 가치를 현실에 구현하기 때문이다. 베지터블 가죽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느낌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날것 그대로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원료의 제작 공정에서 모든 선택들은 일관된 가치를 가지고 연계되며, 비슷한 가치를 가진 선택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원료의 선택에 적용된 가치는 그 원료를 사용한 제품의 디자인과 제작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앞서 언급했듯, '가죽의 불규칙성을 제거하고 제품으로 만들기 좋도록 가죽을 평탄화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산업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작업자 중심적인 시각이다) 산업적 시각에서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걸리며 생산성이 낮은 베지터블 무두질을 선택할 이유가 없으니, 탑그레인 레더들은 대개 비슷한 산업적 시각을 가진 크롬 가죽을 사용해 가공한다. 많은 공산품들이 그러하듯, 산업적 논리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이나 사람을 거스른다.

반대로, 힘들게 ​긴 시간을 거쳐 베지터블 탄닌으로 무두질한 천연 가죽은 작업효율이나 원가 등 산업적 논리와는 거리가 먼 인본적 가치들과 연결된다. 깔끔하고 번지르르한 겉모습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품질이 더 중요한 사람들, 당장 내가 돈을 주고 구입하는 물건보다 그 이면의 삶과 환경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가치다. 베지터블 가죽은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베지터블 가죽에 있는 수 많은 결점들을 사랑한다. 가죽의 표면에 남은 결점들은, 감춰진 다른 가치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부분도 똑같은 모습이 없고, 어느 부분을 보아도 자연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내 피부에 닿는 가죽제품들이 조금이라도 화학공정을 덜 거치기 바라고, 나의 소비가 좀 더 가치지향적이기 원한다면, 진짜 베지터블 가죽을 찾아야 마땅하다.

 

 

 

참고 : http://en.wikipedia.org/wiki/Leather

 


* 본 게시물은 헤비츠 고유의 저작물입니다.

상업적인 용도로 무단 사용할 시 법적 대응합니다.


 원문 : 헤비츠의 가죽이야기 3. 관점을 바꾸면 가치가 보인다 풀그레인 Full-grain Leather_헤비츠저널

 ⓒ hev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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