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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죽이야기 9. 베지터블 가죽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작성자 헤비츠 (ip:)
  • 작성일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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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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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fference between vegetable tanned leather and chrome tanned leather


베지터블 가죽을 구분하는 방법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등 보통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교과서의 품질입니다. 서술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지식을 획일화한다는 것인데, 분명 이는 옳은 지적이지만 비판의 방향이 틀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교육에서 교과서란 다양한 기초적 지식을 표준화하여 일률적으로 습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서술된 교본이며, 교사의 수준이라던가 기타 다양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학습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일정한 한계와 분명한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지향형 장치인 것입니다.

헤비츠의 가죽이야기에서 베지터블 가죽의 특징을 서술할 때 취했던 태도 역시 교과서와 비슷한 목적과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죽의 에이징과 스크래치는 오늘날 대부분의 베지터블 가죽이 가지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베지터블 무두질이 아니라 표면 코팅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이 스며들고 스크래치가 나는 가죽이라고 해서 모두 베지터블 가죽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베지터블 가죽을 구분하는 방법을 다루기에 앞서, 이 논의는 가죽 소비시장의 근본적인 한계와 얽혀 있으며, 이 한계를 벗어나는 데는 전혀 다른 형태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도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 : 김준기

원문게시일 : 2015.12.22​

최종수정일 : 2016.05.10



1. '특징'의 본질
특징이란, '다른 것과 구별되어 나타나는 특별한 징표'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됩니다. 이 성질은 정량적 요소가 결합된 정성적 평가로 볼 수 있습니다. 경향성이라는 일정한 패턴을 먼저 찾고, 비교 대상을 선정하여 대조할 때에야 비로소 특징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경향'이라는 것은 시간적 방향성을 갖춘 동적 개념입니다. 즉 '특징'이라는 것은 특정 기간에 갇혀 있는 개념이며, 특징으로 꼽힌 성질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비교 대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특징은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문제 중 하나였던 '디젤게이트'를 통해 디젤의 특징을 예로 들어 보면, 특징의 이러한 특성들이 좀 더 잘 드러납니다. 디젤 엔진은 휘발성이 낮은 디젤 연료의 본질적 특성에 맞춰 압축착화방식으로 구동되며, 이에 따라 열효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특징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방식 때문에 질소산화물이 생성되고, 경유 생산에 사용된 황이 섞여 함께 연소하면서 이산화황이 생기며, 디젤연료의 불완전 연소 때문에 매연이 발생합니다. 오랫동안 매연은 디젤 엔진의 특징이었으며, 특유의 냄새와 검은 매연 때문에 디젤 차량은 대기오염의 주범처럼 여겨 졌습니다.
이 디젤 엔진의 특징은 대부분 디젤 연료의 낮은 휘발성에 기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커먼레일로 대표되는 고압분사 기술의 발전으로 상당한 개선을 했고, DPF나 SCR 등 후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른바 '클린디젤'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 집니다. 이 시기, 디젤 엔진의 주요 특징에 '매연'은 잡히지 않습니다. 경제적 연비와 함께 비교적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나오는 높은 토크로 힘 있는 엔진이라는 것이 디젤의 특징이었습니다. 결국 2013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디젤 엔진 차량의 판매량이 가솔린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한국자동차산업협회 발표 '2013년 국내자동차신규등록현황').
하지만 '정말 디젤이 클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작금의 디젤게이트는 그에 대한 문제제기 과정 중 발견된 것으로, 정확하게는 '엔진 출력을 유지하거나 높이면서 배기물질을 줄일 수 있느냐'라는 의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디젤 엔진에 대한 배출가스 기준이 유로5에서 유로6로 훨씬 엄격해 지는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배기물질의 양을 줄이려면 배기량을 줄여야 하는데, 배기량과 출력에서 전혀 손해를 보지 않고 배기물질의 양을 줄인 독일차의 기술력에 찬사와 의혹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의 출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욕망에 손쉽게 어필하기 위해, 제조사가 배출가스 측정절차의 헛점을 파고들었던 사건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결국 디젤게이트란, 에너지법칙에 대한 실패한 도전과 이를 가리기 위한 사기극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디젤게이트 이후 '역시 가솔린이 깨끗하다'는 오해도 상당합니다. 물론 '가솔린이 완전연소한다'는 것은 디젤 연료에 상대적으로 대비시킨 가솔린 연료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솔린 역시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 등을 뿜어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디젤 엔진과 비슷한 수준의 출력을 달성하기 위해 직분사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도리어 탄소배출량이 더 많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소엔진들은 다양한 후처리 장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세입자, 초미세입자, 나노입자 배출을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연소엔진차량과 비교하면, 전기모터차량은 배기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생깁니다.

전기차량은 정말 친환경적일까요.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기차량을 운용하기 위한 제반 설비와 발전 및 송전 시스템까지 고려했을 때, 대체로 연소엔진 차량에 비해 화석에너지 효율은 두 배 정도 높고, 탄소배출량은 절반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도심 대기환경에서 더 나은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자전거와 비교하면 여전히 화석연료를 소모하고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현재 한국은 원자력으로 생산되는 전기 비중이 30% 정도, 화력발전이 60% 이상인데, 향후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자체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보다는 원자력 발전소 확충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전기차가 늘어나는 상황을 과연 친환경으로 볼 수 있는지 또한 의문이 있습니다. 결국 대체에너지가 개발되거나 친환경 발전량이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높이기 전까지는, 전기모터차량의 친환경 특징 또한 여전히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특징의 특정
우선 서두에서 베지터블 가죽의 특징으로 언급했던 다음의 문장, 즉 "가죽 표면에 코팅이 없어 스크래치가 쉽게 나고, 유수분의 침투가 쉬워 가죽이 점차 에이징이 된다"는 것은 엄밀하게는 표면코팅이 없어서 생기는 특징입니다. 헤비츠 레더 아카이브의 '가죽이야기'를 정독한 독자라면 누구든 이 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지터블 가죽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부 포스팅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마치 베지터블 가죽의 특징인 것처럼 단순화하여 글을 구성했던 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식의 단순화는 전달력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시도되지만, 항상 오해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이 단순화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2010년 발간된 UN산업개발기구(UNIDO)의 보고서에서 확인되는 바, 현재까지는 "자동차 시트가죽 부문에서 크롬프리 가죽이 잠식하고 있음에도 불구, 여전히 크롬가죽(웻블루)는 전체 가죽 제조의 80~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가까운 시일 내 작성된 믿을 만한 자료는 아직 찾기 어려운데, 다만 제조비용 측면에서 크롬무두질의 장점이 워낙 뚜렷하고, 6가 크롬에 대한 기술적 보완이 계속해서 이뤄 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크게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 역시 일견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생산구조의 변화에 있어 '인간의 욕망'이 가장 큰 돛이자 가장 무거운 닻이라는 점은 디젤게이트나 크롬제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크롬 무두질에 대한 베지터블 무두질의 대척점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994년 이탈리아 베라펠레 컨소시엄의 합작 이후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이 즈음하여 6가 크롬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2004년부터 새로운 화학안전규제 REACH Regulation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토스카나 지역의 베지터블 가죽 생산자들이 모여 구성한 이 컨소시엄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2012년에 이르러 마침내 UNI 10885:2012 vegetable tanned leather라는 자국 표준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그러니 적어도 베지터블 가죽에 대한 표준적인 정의라던가, 제대로 된 차이점을 기술할 확실한 정보가 주어진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인류가 오래도록 지속해 왔다는 베지터블 무두질에 대한 정보는 생각만큼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최근 백 년 동안 전통적인 무두질이란, '후진국의 산업화되지 않은 어렵고 더러운 무두질'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웻블루'가 지난 백 년간 인류의 혁신이자 빛나는 산업화의 성공으로 여겨 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지터블 무두질이 친인간적인 특징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무두질 공정 자체가 위생적으로 관리된 이후의 일이며, 그조차도 이탈리아 등 일부 개발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부 가죽공예에 관심이 많은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누메'나 '브라이들' 등 고급가죽 정보가 공유될 뿐이었고, 이전 자료들은 많은 경우 일본어 등 외국어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의 접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글정보도 충분하지 않고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제작자가 일일이 무두질과 가죽의 제조에 대해 모두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보다는 '수제'라거나 '전통 제조방식' 등, 소비자들의 수준에 맞게 단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지금도 베지터블 가죽을 이런 단어로 설명하는 시도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점을 2014년 이전으로 옮길수록, "크롬가죽은 안료와 비닐코팅 등으로 마감한다"는 문장이 들어맞을 확률은 높아집니다. 이런 관점을 개인이 가질 때는 잘못된 편견이라고도 하지만, 확률이 높아지고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면 일정한 경향이 됩니다. 과거에는 베지터블 가죽의 특징을 "가죽 표면에 코팅이 없어 스크래치가 쉽게 나고, 유수분의 침투가 쉬워 가죽이 점차 에이징이 된다"고 설명하는 것은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특징을 특정한 시점에서, 현상에 잘 들어 맞았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 상당히 많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동네 시장 상인들도 이해하는 '마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사실 이것이 전혀 옳지 않은 셈법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일부 전공자만 이해하는 복잡한 경제학적 수식을 동원해서 순이익을 냈을 때, 많은 경우 시장 상인들의 마진과 유의미한 차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진의 개념은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별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엄밀해 보이는 물리학에서조차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2차원 평면에서 성립하는 유클리드 기하학은 책상 위에서 작도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구형 지구의 표면에서는 큰 오차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인류가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이 사용한 원칙입니다. 대부분의 인류가 거주하는 지구 표면에서는 뉴턴의 물리법칙이 잘 들어 맞지만,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특수상대성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오늘날 뉴턴의 지식은 완벽한 진리와 거리가 멀지만, 여전히 지구상에서 중력을 계산할 때 아주 간편한 공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3. 변화하는 가치와 지켜야 할 가치
크롬 무두질은 산업화를 상징합니다. 이 산업화가 지금은 몰가치한 대량생산, 저가품의 범람, 표준제품의 획일화 등을 특징으로 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선진적이고 혁신적인 개량이었습니다. 무두질은 점점 체계화되고, 집중화했으며, 위생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가격은 저렴해 졌습니다. 생산 집중화 때문에 한동안 막대한 환경 비용을 치러야 했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이 부분에서도 상당히 안정되었다고 평가 받습니다. 덕분에 제혁업은 오늘날의 거대한 축산업 사이클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부산물(by-pruduct)을 새로운 가치가 있는 소재로 변환시키는 재활용 산업이 되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풍족해 진 도시 소비자들은 다시 예전의 가치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뿐인 공예품을 찾고, 약간은 원시적이며 자연적인 느낌을 소비하며, 가급적 친인간적인 소재로 주변을 바꿔 갑니다. 현대적 생산방식을 갖춘 베지터블 가죽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 나타난 '현상'인 것입니다. 중금속에 대한 위험성을 제거하려는 소비자의 요구에 크롬가죽도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마감법의 변화 유인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관점에 매몰되지 않도록, 상황에 따라 변화한 요소와 변화하지 않은 요소들도 충분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의 특징"과 같은 지적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 무두질에 따른 특징이 아니라 마감에 의한 차이이므로, 결국 흉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소비자의 관점에서 크롬 가죽의 겉보기 특징 대부분은 베지터블 가죽의 그것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체로 베지터블 가죽은 뻣뻣하고 쉽게 흠집이 생기며 잘 오염됩니다. 대개는 색도 칙칙하고 선명하지 않은데다, 여기저기 점이나 흉터 등 가죽 본연의 내추럴마크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호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이런 특징들을 굳이 크롬 가죽이 흉내 내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재 크롬가죽은 결국 더 많은 공정을 거쳐 더 저렴한 가죽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베지터블 가죽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앞으로 크롬 무두질한 가죽이 베지터블 가죽처럼 마감할 위험은 분명 있습니다.
다만 "베지터블 가죽 표면에 코팅이 없어 스크래치가 쉽게 나고, 유수분의 침투가 쉬워 가죽이 점차 에이징이 된다"는 서술이 엄밀하게는 틀렸을지언정, 확률적으로는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급 원장은 더 좋은 값을 받기 위해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비용이 좀 들더라도 친인간적인 무두질 방법을 택하고, 소재의 품질이 충분하니 가급적 마감도 최소화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 냅니다. 반대로 저가 원장들은 마감 과정에서 저품질 요인들을 커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인을 갈고 커버안료를 올리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저렴한 원장을 고급품으로 탈바꿈시킬 의도와 기술이 없다면, 굳이 비용이 높은 베지터블 무두질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스크래치가 쉽게 나고 에이징이 되는 가죽 = 베지터블 가죽'이라는 등식은 항상 성립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꽤 쓸만한 구분법이긴 합니다.

현재까지는 오히려 베지터블 가죽이 크롬 가죽 흉내를 내려는 유인이 더 큽니다. 예를 들어 한참 깨끗하고 균일한 가죽면에 대한 요구가 강력하던 20세기만 해도, 많은 제혁업체들이 1등급 고급 원장에 서슴없이 도장을 했습니다. 가죽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재료인 만큼, 1등급 원장이라고 해서 표면 전체가 균일하고 전혀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과거의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습니다. 실제로 '깨끗한 가죽'에 대한 요구는 아직도 거세기 때문에, 고급품 제작 과정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면이 상당합니다. 이 때문에 코팅을 한 베지터블 가죽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죽면을 커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사용상의 어려움입니다. 마감이 없는 가죽은 멋지게 에이징 되지만, 이 말은 뒤집으면 꾸준히 오염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죽은 거의 대부분 오염을 막아 주는 코팅을 하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왁스나 오일로 가죽을 마감해 왔고, 지난 한 세기 동안 비닐 코팅을 꾸준히 발전시켰으며, 이제는 오염을 막아 주면서 에이징이 가능하다는 초박막 코팅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 '천연' 가죽의 진위를 흐리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꾸준한 진보와 발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가죽의 심미성을 저해하고 내구성을 약화시키는 현재의 코팅 기술이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면, 세미아닐린과 같은 개념은 언제든 좋은 절충안이 될 겁니다.

그러나 결국 변하지 않는 원칙은 가치관입니다. 만약의 확률로, 백만 분의 3그램 정도 미량의 크롬일지언정 피부를 통해 흡수될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고, 안전기준에 적합한 3가 크롬일지라도 강한 햇빛 등에 의해 산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크롬 무두질 소가죽은 물론 크롬이 들어간 도료도 사용하지 않아야 친인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0.15미리 이하의 극히 얇은 피막일지라도, 그 고분자화합물을 가죽 표면에 씌우기 위해 가소제, 안정제, 접착제, 산화방지제, 내열제 등 수 많은 화합물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아직까지 우리 제조법이 소비자에 유해한 물질이라도 미량이라면 허가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어떠한 종류의 코팅이라도 거부해야 친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근본적 한계
이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 남았습니다. 분명 마감 방식에 따른 구분은 확률적으로 여전히 적용 가능하지만, 전혀 완벽한 구분법이 아닙니다. 손톱으로 긁어서 스크래치가 쉽게 나고, 침이나 콧기름을 발랐을 때 곧바로 스며든다고 해서 베지터블 가죽임을 확인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특징들은 베지터블 무두질로 인한 것이 아니고 표면마감의 유무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아니, 질문을 정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는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항간에 떠돌던, 이를테면 단면의 색상을 확인하라거나, 가죽을 태워 불꽃의 색상이나 남은 재를 보라거나 하는, 그저 '척 보면 안다'는 소위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전설들 역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궁여지책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가여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3ppm농도의 크롬을 냄새로 구분해 낼 수 없고, 가죽을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뜯어본다 해도 어떻게 무두질 되었는지 결코 밝혀 낼 수 없습니다.

일반 소비자가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을 정확하게 구분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지요. 그냥 보고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국가적 인증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가 인증이 제대로 시행되면, 기관이 제조시설을 직접 확인하고, 연구소에서 제조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며, 표준법으로 정확한 표시사항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시장의 제품들을 검사해 불법행위를 처벌하게 될 것입니다. 인증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부정행위에 대한 비용이 높아지면, 유인이 줄어들고 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사회적 신뢰비용이 낮아지게 됩니다. (관련글 : 제뉴인레더의 함정)
아쉽게도 현재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을 정확히 구분하는 인증제도는 한국에 없습니다. '베지터블 가죽'이라는 표기의 사용기준이 법적으로 정해 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인증과 처벌수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KS규격은 '기준치'를 넘는 크롬 검출량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적발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기술적으로 현행 표준 시험검사는 '가죽에서 어떤 성분이 검출되는지'를 밝히는 것이지, 가죽이 어떻게 무두질 되었는지를 알아 맞추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행여 베지터블 무두질을 한 가죽이어도 도장 과정에서 크롬이 사용되었다면 표준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실상 일반 제조업자가 나름대로 베지터블 레더를 증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가죽에 대한 KS표준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이번 개정에서 이 부분이 다뤄 질지,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기준이 만들어 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과반수 생산자를 규제하는 국가 인증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용한 구분법은 다만, '신뢰할 만한 생산자 규제를 가진 국가나 믿을 만한 브랜드에서 인증을 받은 베지터블 가죽'을 찾는 일입니다. 2016년 현재까지 베지터블 가죽에 대한 국가인증을 시행하는 곳은 이탈리아 뿐입니다. 앞으로
베지터블 가죽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점유율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에게 유익한 진보가 계속 될 것입니다.  




ⓒ hevitz x manu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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